※ 중국과 같다?
“한국은 禮節의 나라인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흔히들 생각하는 말이 ‘東方禮儀之國’이다. 그런데 글 좀 했다는 사람들은 ‘동방’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禮節은 중국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과연 우리 禮節은 중국의 그것과 같은가? 아직 禮節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정의를 정확히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禮節은 생활방식이다’ 라고 대략적으로 단정 짓고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자, 한국인과 중국인의 생활방식을 한번 비교해 보자. 삼척동자가 보아도 두 민족의 모습은 상이하다. 말, 음식, 옷 등등의 모든 생활 방식이 틀리다. 그러므로 禮節 또한 틀리다는 것은 자명하다. 환경론적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환경 가능론 혹은 환경 결정론의 구분에 관계없이 인간은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말이다. 예컨대 중국은 그 넓은 땅덩이로 말미암아 지역에 따라 특이한 문화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산동지방은 한국과 위도가 같아 한국의 기후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중국의 산동사람들은 다른 지방의 중국 사람들보다는 한국인과 비슷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대 夷족의 영역이 산동지방을 포함한다. 그러나 대륙과 반도의 성격 및 지질적인 특성을 포함한 모든 요소가 같지는 않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상이한 국가에 포함되어 오랜 시간 분리되어 왔기에 서로 다른 생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중국의 엽차 문화가 발달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숭늉 문화이다. 물이 탁한 중국은 차 문화가 발달되었으나 물이 맑은 한국은 굳이 물을 끓여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 어느 가정을 가보아도 제사상에 차 올리는 집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차를 올린다. (이러한 중국의 풍습을 보고 한국은 그 실상을 모른 채 이름만을 도용하였다. 그것이 바로 ‘차례’이다.) 중국의 禮節과 한국의 그것이 같다면 왜 우리 제사상에 차를 올리지 않는가? 우리 조상들께서 현대의 한국인처럼 ‘서양이 이러니 우리도 이러자’ 라고 하며 중국의 것을 그대로 도용하였을까? 퇴계 선생은 ‘숭늉으로 대신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고,「사례편람」이라는 禮節書에는 ‘차 언급은 않겠다.’라고 단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또한 상장례에서 한국의 효자는 묘지 앞에 여막을 짓고 3년 간 묘지를 모시는데 주자가 지은「가례」에는 이러한 시묘(侍墓) 제도가 없다. 앞으로 보다 자세한 언급이 있겠지만 3년 상은 중국 사람들이 본받고자 했던 한국의 고유한 제도이다. 물론「논어」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그때 당시의 중국에선 널리 전파된 듯 하다.「동이열전」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3년 상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혼인례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다른 풍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첫날밤을 보내는 장소만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여자 집에서, 중국은 남자 집에서 첫날을 지낸다. 요즘처럼 신혼여행이라 하여 뭇사람들이 묵고 간 호텔에서 첫날의 고귀한 합궁을 하지 않았다. 혼인례에서 합궁의 의미는 결혼이 아닌 혼인이라는 단어와도 연결이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후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성인식인 관례도 역시 중국의 전설적 제왕인 황제(黃帝)가 夷족의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학자에게서 배우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방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이렇듯 관혼상제의 세세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중국의 그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역시 골수적인 사대주의자들이 왕왕 언급하는 禮書는 주자가 쓴「가례」이다. 흔히들 ‘주자가례’라고 알고 있지만 ‘주자가례’라는 책은 안타깝게도(?) 없다. 그들 말대로 한국의 禮節이 중국의 그것이라면 주자의「가례」가 전래된 1319년 전에는 우리 禮節이 없었다는 것인가? (충숙왕 6년-1319년 6월에 유연, 유적을 강남에 보내 송의 비각도서 10,800권을 사옴, 다시 원으로부터 4,701책을 받아 옴.) 백번 양보하여 없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주자「가례」전래 전에는 禮節이 없었던 나라에 禮書가 있었음은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그 내막은 이렇다. 우리나라 최고의 금속활자 책은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다. 그러나 부전되기 때문에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 책은 프랑스에 있는「직지심경」이다.「상정고금예문」은 옛날과 지금의 禮를 자세히 밝혀 집대성한 책으로서 고려 인종(재임기간 1123~1146) 때의 학자 최윤의 등 17명에 의해 쓰인 책이다. 모두 50권으로 구성되어 졌는데, 이 같은 내용은 「고려사」「예지」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또한 이규보의 책에도「상정고금예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상정고금예문」은 언제 쓰여 졌을까?「상정고금예문」은 최대로 늦게 잡아도 1146년 즉 인종 재임기간의 마지막 년까지는 전부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로 가정해도 1146년. 주자가 1169년에야 비로소「가례」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골수 사대주의자들의 주장이 허구인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 말고도 중국과 다른 우리 고유의 방식은 일일이 예를 들기에는 너무나도 많다.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여러 禮節에 관한 내용들이 전부 그러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의식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현대에 이르러 발견되는 갑골문 기록을 보면 화하 문명중심주의는 한 이후에 성립된 왜곡된 중국인들의 열등감의 표출임을 알 수 있다. 높은 정신문화를 이룬 이족은 중국인들에겐 숭상의 대상 이였으며 부러움의 대상 이였다. 춘추시대를 거쳐 진행된 이족 깎아내리기 작업은 이러한 감정의 반증임을 알 수 있다.(「孟子」公孫丑 上에 나오는 고사인 ‘助長’,「韓非子」五蠹篇에 나오는 ‘守株待兎’ 고사의 주인공이 전부 殷의 후예인 宋人이다.) 이후 ‘夷’ 자는 ‘仁’의 의미가 아닌 ‘오랑캐’라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한 이전의 중국 문화는 다원주의의 문명 이였으며 후의 남북갈등과는 다른 동서갈등이 주를 이뤘었다. 고고학의 발달은 기존의 동북아 고대 역사관의 왜곡됨을 정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의 귀속문제, 고구려 고분의 유네스코 등록 문제는 중국의 다급해진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세계 7대 문명은 중국, 힌두, 이슬람, 기독교, 아프리카, 남미, 일본이다. 그런데 중국이 7대문명으로 들어간 이유는 다름 아닌 유학 때문이다. 더욱더 발전되는 고고학에 의해 유학의 원류가 이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중국은 7대 문명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무분별한 중국 또는 서양문물에 대한 사대주의는 우리 고유의 훌륭한 문화를 버리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예컨대「상정고금예문」의 부전도 주자「가례」가 있기에 필요 없어진「상정고금예문」의 분서에 그 원인을 추측하고 있다. 또한 돌아가신 조상의 생신날에 지내는 제사인 이제도 주자의 생일인 음력 9월 15일에 공통적으로 지내고 있다. 안타까운 우리의 왜곡된 사대주의적 모습 들이다. 禮節을 공부하기에 앞서 확고한 주체성의 확립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전통 禮節에 관하여 얼마나 몰랐고, 이에 관하여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해왔는가라는 처절한 충격을 동반한 주체성의 인식은 올바른 한국의 禮節을 알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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