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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강유위 '대동서'
글쓴이 김경수 작성일 2005년 03월 27일 13시 23분 58초
E-mail kks1789@naver.com 조회수 1730
「소학(小學)」에서는 나누는 것(分)을 강조하여 각각의 역할ㆍ선ㆍ길을 정확히 밟아가는(履) 행위를 강조한다. 이와 같은 나눔에 따른 역할ㆍ선ㆍ길의 의미는 모범(模範)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현실의 구체적인 덕목까지 다루는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형화된 체계에서는 역할ㆍ선ㆍ길을 벗어나는 것이 곧 악(惡)이 된다. 탈선(脫線)ㆍ비행(非行)이라는 혹평을 부과하여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나, 누구나가 모범의 최종 목표인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 물론 도덕적인 삶과 일상의 삶(灑掃應對)을 중요시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리에 따른 각각의 덕목을 강요함으로써 비롯되는 구조적 폐단의 측면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한다. 분리가 지배층의 지배구조를 보다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ideology)적 장치임을 고려한다면, 교육을 ‘지배정당화의 재생산 수단’으로 보는 막스(Marx) 식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유위(康有爲)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역할ㆍ선ㆍ길이 있음으로 하여 인간사의 제악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분리에 따른 소수자의 권력독점 및 성인들에 의한 시비(是非)규정 등이 그것이다. 나눔에 따라 생기는 금욕적 법률 역시 인간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다가온다. 결국 역할ㆍ선ㆍ길의 나눔에 따라 생기는 금욕적 법률 등은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폐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욕망 충족의 억제는 곧 악과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강유위는 선악(善惡)을 기존의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난 홉스(T. Hobbes)식의 해석으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강유위의 주장은 서구근대의 정치사상과 많은 유사성이 있다.
고대와 중세를 거치며 성립 유지되어온 사실ㆍ존재(FactㆍIs)와 가치ㆍ당위(ValueㆍOught)의 일치는 르네상스(Renaissance) 및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을 거치며 양자 간의 구별ㆍ분리를 초래한다. 그에 따라 비관계적이고 개체적인 인간관이 사람의 본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더욱이 과학혁명에 의한 분석적(resolvable) 방법과 기계론적(mechanistic)ㆍ원자론적atomostic) 세계관의 확립은 위의 본성관을 바탕으로 한 서구 근대 개인주의(Individualism) 문화의 확산과 심화를 촉진시켰다. 그리하여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의해 강조되었던 진리추구의 조건인 자율적ㆍ주체적인 이성(reason)은 욕망(desire)을 극대화시켜주는 수단으로서의 계산능력(calculation capacity)으로 전락되었다. 도구적 이성(instrumental rationality)으로 무장한 고독한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self-interest)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근대적 인간관의 배후에는 자기보전(self-preservation)이라는 연역적 근거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보전을 위한 이기적 행위를 함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 희소성(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유한한 자원:scarcity)과 그에 기인한 경쟁ㆍ갈등ㆍ전쟁 상황(against for all)의 발생이다. 이에 개인들은 이기적 행위를 보다 조화롭고 안전하게 추구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틀(rule)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계약(social contract)에 의해 성립되는 국가(commmonwealth)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시각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기된 공적영역(vita activa)과 사적영역(vita contemplativa)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적 자아가 진아(眞我)라는 생각을 자리 잡게 한다. 그에 따라 정치적 존재(political animal)로서 폴리스(Polis)의 문제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실현(self-development)하는 공화주의(republicanism)적 시민의 가치는, 공적인 참여를 부담(burden)으로 느끼고 오로지 개인적 삶에만 몰입하는 것을 행복(private happiness)으로 아는 개인주의적 개체의 가치로 변화하였다. 더욱이 자유(Liberty)의 개념 역시 '견제나 방해가 없는 상태(absence of restraints)'인 소극적 자유개념으로 변하여 개인주의와의 만남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개인의 자유는 필요악적인 국가 권력(authority)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한다.-이후의 정치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방법에 관한 것이다.
무관계적(irreconcilable) 실재(實在)인식에 기인한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은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더욱이 권리(right)와 자유가 절대화되어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ㆍ의무ㆍ유대도 거절하는 ‘나만의 울타리(privacy)’ 신성화는 가공할 정도이다. 그에 따른 고독하고 소외되고 분리ㆍ고립된 인간은 공적영역에 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공적영역의 타락에 아무런 노력을 할 수 없다. 또한 정치의 영역도 각각의 이해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는 권위 개념의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분석적 환원주의(analytic reductionism)와 종합적 전일주의(synthetic holism)의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현대물리학의 ‘연계적 개체(holon)’ 개념이다. 이 개체는 두 가지 성질을 지니는데, 보다 포괄적인 전체의 구성부분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통합경향과 자신의 개체적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기주장적 경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 성질은 상반되지만 상호보완적이다.(inseparably complementary polarities) 그리고 이 두 성질은 형평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거대한 환원주의적 흐름은 투쟁과 갈등의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다. 자연계의 모든 갈등과 투쟁은 보다 포괄적인 조화를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상대적 성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포괄적 조화는 전체적인 일치 및 맹목적인 획일화가 아니다(和而不同). 강유위가 말하는 대동의 사회는 이러한 일치ㆍ획일화의 사회이다. 공상적인 이상향일 뿐인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계획하고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의 다원주의(Pluralism)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어떠한 실재관념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 전통문화와의 상호보완이 고독한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중용(中庸)의 자세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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