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위치 : HOME > 나눔방 > 사랑방 |
 |
제 목 |
온고지신의 효 개념 |
글쓴이 |
김경수 |
작성일 |
2005년 03월 29일 14시 27분 28초 |
E-mail |
kks1789@naver.com |
조회수 |
1690 |
溫故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 ‘새 것을 아는 것’ 보다 ‘앎을 새롭게 한다’라는 해석을 하고 싶다. 傳統을 익히는 것과 옛 것을 익힌다는 것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것을 아는 것과 앎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孝 담론 주창자들의 숨은 의도에 관한 내용이 바로 그렇다. 孝. 좋은 말이다. 부모님께 孝道하면 좋지 않은가?
그런데 孝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받았을 경우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孝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 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孝 개념에 관한 새로운 의미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언제나 그러하듯 東洋的 사고의 기본 개념은 相互關係性이다. 五倫이 그렇고 自然觀도 그러하다.
孝 역시 마찬가지다. 董仲舒의 官學化된 왜곡된 개념이 아닌 孝의 본래의미는 부모의 慈愛로움을 그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자식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기에 그 부분은 당연시 되다보니 자식의 孝만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자식 먼저 죽이고 자살하는 부모들,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에게서 慈愛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가?
父慈가 전제되지 않는 子孝는 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子孝는 어떤가? 부모살해는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젠 어떠한 안타까움의 동요도 없다.
더욱이 孝의 부정적 수직윤리를 의도하려는 못된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기존의 孝 관념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가 많다. 그렇다면 孝 관념을 버려야 하는가? 극단적인 선택의 후유증은 오래 가는 법. 孝에 관한 의미의 새로운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孝는 生命思想과 연결되어야 한다.
生生不已의 자연원리를 사회원리화한 것이 바로 孝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弱肉强食의 自然法則 역시 전체 생태계의 生을 위한 부분적이고 협소한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주장경향과 상호통합의 경향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기제이다. 과거의 西歐近代思想은 자기주장경향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두 경향은 모두 生을 위한 相互不可分의 兩極 개념(holon)이다. 낳는다는 것은 상대를 살려주는 논리와도 상통한다. 상대를 살리는 것이 곧 仁이며 사랑이며 慈悲이다.
그렇기에 孝 역시 생명 출산에서부터 仁이라는 도덕윤리, 生이라는 환경윤리까지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 하에서는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相互關係的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수직적 관계의 폐해로 허덕이고 있는 한국사회에 있어서도 빛과 소금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출산하여 자연에 이바지하고, 자연을 살리고, 너와 나를 살리고, 부모와 자식을 살리고, 노동자와 자본가를 살리고 국민과 국가, 지구촌을 살리는 孝 관념의 새로운 전환이야 말로 傳統의 장점을 살리고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새 것을 아는 자세 보다 앎을 새롭게 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