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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우열이 아닌 다양으로 <박노자 하얀가면의 제국> |
| 글쓴이 |
김경수 |
작성일 |
2005년 03월 31일 14시 19분 39초 |
| E-mail |
kks1789@naver.com |
조회수 |
1689 |
주류와 비주류의 이분법적 논리(p.11～12)는 역사와 교육이란 수단으로서 지배담론을 강화하고 획일적인 도식에 뜯어 맞춤으로써 주류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한다.(p.13) 우리가 당연시하고 진리라 생각하는 서구의 자본주의도 산업사회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p.276)이지 그것이 곧 진리인 것은 아니다. 주류는 언제나 자신들의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우열의 담론을 재생산한다. 미서구의 보수주의 언론이 만든 ‘서구화=모든 담론의 기본척도(p.17)’ 개념은 동과 서(ex.한국과 러시아)의 왜곡된 앎을 조장하고(p.35), 주변부의 문제를 ‘불가피한 문명적 장애’로 해석하여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합리화하고 있다.(p.293)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 지배자 위주의 시각은 역사의 성과․성취를 위해 동원된 피지배자의 희생을 쉽게 외면한다.(ex.명치유신 당시의 일본 국민) 마찬가지로 주류의 세력들 역시 비주류의 희생 및 고통을 철저하게 무시함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 자유에 관한 본질의 허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 과학(우생학)을 동원하기도 한다.(p.288) 그러나 이러한 주류의 폭력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우열과 근대화의 관점을 우리 식으로 재해석(p.14)하는 것에 있다. 박노자 선생은 ‘제국주의의 규탄을 듣고 자랐던 세대가 하얀 가면을 왜 쓰게 됐는가?(p.284)’하는 표현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주류로부터 배운 것을 우리보다 열등한(?) 민족에게 그대로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서구근대화 의식은 우리에게 뿌리 깊이 박혀있으며 그에 관한 어떠한 비판적 사고 역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뇌물 받는다고 국회의원을 심하게 비판했던 사람이 막상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자 더 많은 뇌물을 챙기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격이다.
근대성의 중요개념인 합리화와 그에 따른 우열의 이분법적 구분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될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일제치하라는 단절된 역사와 미군정이라는 무비판의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에겐 보다 절실한 주제의식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구의 폭력적인 근대화를 직시하고 다른 시각으로의 관용적 해석을 허용하는 포스트모던적인 개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중심이고 발전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모든 것은 주변이요 미개라는 시각의 폐해는 엄청나다. 하지만 ‘나와 다른 너도 있구나!’하는 관용의 태도는 보다 밝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우열은 다양함으로 치환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관용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다양함의 기준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인가 하는 것과 다원주의시대에 있어서 공통의 합의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것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관용은 폭력과 탄압이 아닌 서로의 生을 도모할 수 있다. 타문화 타민족의 生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生을 위하는 차원으로까지 그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의 근본적 전환이 없는 무조건적인 미서구 추종, 동남아ㆍ남미ㆍ아프리카문화권에 대한 냉소와 폭력, 무관심의 태도는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의 서구지향적 태도로 인해 어느새 우리 의식 깊숙이 침투한 또 하나의 우리식 제국주의 논리도 철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왜곡된 또 하나의 소중화를 밟는 어리석은 역사의 답보가 될 수 있다. 결국 우열이 아닌 다양성의 인정과 그에 따른 공존의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관용의 태도는 작게는 개인, 크게는 문화권에까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될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에선 근대국가(nation-state)의 출현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대등의 원칙과 절대주권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적 국가개념의 성립을 일컫는 내용이다. 전부터 이 부분에 관해 많은 의문을 가졌었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왕조 형식의 국가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중국 및 한국에서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된 모습을 보였지만 서양은 일개 가문의 영역 수준이었다. 물론 왕조라는 계급적인 봉건요소 때문에 근대국가가 아닐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유럽 역시 탈왕조의 민주국가는 현대에 이르러 성립된 것을 본다면 적절한 반론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생각을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괜히 꾸중만 들었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라는 질책이셨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노자 선생의 글을 읽으니 내 생각이 그렇게 크게 틀렸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이러한 경험 역시 하얀 가면의 정치학에 묵살된 다양함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앞에서 개인 및 문화 영역에 있어서까지 관용의 태도를 주장했던 내 자신을 생각해 본다. 철저한 제3자의 입장으로 내 자신을 볼 때, ‘과연 너는 너와 다른 것에 관해 관용의 태도를 취했느냐?’의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 하고 대답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겉으로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미국을 동경하지 않았는가? 영어 잘하고 서양식의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을 보면 왠지 열등감을 느낀다. 반면 동남아인들을 보면 얕보는 의식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세계인에 관한 편견뿐만 아니라, 내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다르고 내 논리에 무슨 오류가 있지?’하는 생각보다는 우선 기분 먼저 상한다. ‘감히?’라는 괘씸함이 들 뿐이다. 내가 뭐 잘났는지 정말 안하무인의 저질스런 감정이다. ‘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그러한 태도를 쉽게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생각의 개방성 역시 필요조건이다. 이 같은 수행이 언제 끝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진행형의 노력을 기할 것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내 좌우명을 다시 상기해 본다. 壹是皆以修身謂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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