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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어느 시대의 유교인가 <고려정치사상연구에 있어 유학> |
| 글쓴이 |
김경수 |
작성일 |
2005년 03월 31일 14시 21분 26초 |
| E-mail |
kks1789@naver.com |
조회수 |
1687 |
어느 시대의 유교인가?
儒에는 유교, 유학, 유도, 유가 등의 다양한 명칭이 있다.(굳이 하나하나의 개념을 따지진 않겠다. 사상적 맥락에서는 보통 유학이란 명칭을 사용하며, 유교는 종교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저자가 ‘유교’라 표현한 것은 불교와의 대비적 논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똑같은 유학이라도 先秦유학, 漢 유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실학 등의 다른 학문적 분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 전기라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先秦유학과 漢 유학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유학이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유학에 관한 왜곡된 인식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관학화된 漢 유학을 유학의 전체 모습이라 파악하여 유학을 비판하고 없애야 될 사상으로 왜곡된 인식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식과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유학은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의미 구분 없이 先秦유학과 漢 유학의 모호한 혼동으로 인식한 것 같다. 先秦유학과 漢대의 유학은 그 성질을 달리한다. 漢대에 이르러 나타난 삼강의 등장, 효충 의미의 변질, 음양오행설의 도입, 天 관념의 변질에 다른 재이설, 천인감응설, 대일통사상 등은 지배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기위한 先秦유학의 변질을 의미한다. 중세라는 시대적 요청 및 陽儒陰法이라는 漢 제국의 지배논리가 투영된 유학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승로가 제안한 유교는 다름 아닌 漢 유학이다.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인「시무28조」의 유불 역할분담론(p.25~26)에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유학의 모습이 다름 아닌 漢 유학임을 알 수 있다.(선진유학과 복잡하게 얽힌 당시의 유학관과 다르게 최승로가 건의한 유학의 정치적 의미는 한 유학과 유사한 동기와 배경, 특색을 지닌다.) 여말선초의 유학은 성리학이라는 표현을 하면서「시무28조」의 유학을 그냥 유학이라 명명하는 것은 학문의 방법에서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잘못된 유학관이다. 물론 당시 유학이 지금처럼 확실하게 나눠줘서 인식되지 않았고, 유학이란 이름으로 두루 사용된 고려시대를 감안한다면 이 같은 개념 구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활용된 유학이 漢 유학이고, 여타 유학과는 다른 특이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념 구분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시무28조」의 유학이 漢 유학이라면 ‘합리적 실용적’(p.26, 29)이란 수식은 어울리지 않는 수사임에 틀림없다. 물론 당시의 미신적 요소와 비교해 본다면 그러한 수식이 알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학사상사적 측면으로 본다면 漢 유학이 결코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진 법가사상의 실패 요인과 민중의 합리성 비교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합리적이란 수식보다는 오히려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중세의 계급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물론 성리학의 수용을 위한 중간적 단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합리성을 강조하기에는 모자란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당시 유학의 사상사적 한계이기도 하지만(불교의 형이상학에 대응하기에는 현실 중시의 선진유학과 지배윤리의 한 유학은 분명 사상사적 한계가 있다.) 중세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이 「시무28조」를 통해 유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두된 정치사상사적인 의미를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학의 학문적 특성상 어떤 유학인가에 관한 명확한 언급의 부재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유학의 잘못된 명명에 따른 왜곡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현대 한국에서 유학 개념의 불확실성은 정치사상 연구에 있어서도 똑같이 왜곡된 인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어느 시대의 유학인가?’에 관한 정확한 구분은 유학을 전통으로 했던 한국 역사와 관련된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논의해야 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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