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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자유인의 효도일기 82]서걱이는 댓바람소리
글쓴이 최영록 작성일 2005년 04월 03일 20시 45분 48초
E-mail yrock22@naver.com 조회수 1688


오늘은 너무 보람된 날이다. 모처럼 아버지께 ‘효도’를 해드리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자유인 주제에 무슨 효도라고? 효도는 반드시 돈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마음 씀씀이가 몇 배 더한 효도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나는 알았다.

봉양(奉養)보다 양지(養志)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중학교 도덕시간에 배웠다. 봉양이란 부모님에게 맛난 것과 좋은 옷을 해드리는 것이고 양지란 뜻을 헤아려드린다는 뜻이다. 벼르던 일을 기어이 실천한 보람을 한번 들어보시라.

새벽 5시. 다들 자고 있는 신새벽. 신발끈을 메다. 철산동에서 사진작가 친구를 픽업, 고향으로 내달렸다. 몇 달을 미룬 미팅이었다. 고향 도착 9시. 겁나게 빠르게 와버렸다. 쭉쭉 뚫린 서해안고속도로. 시속 보통 150km이다. 단속카메라만 교묘히 피하면 그만이다.

전화 한 통 안하고 금세 날라온 막내아들 때문에 놀라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곧바로 5일장 오수를 향했다. 더구나 낯모른 친구를 데리고. 어머니를 목욕탕앞에 내려드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장수군 산서면 백운리로 향했다. 아버지 탯자리를 찾아서. 9살때까지 사셨다한다. 70년전이다.

집뒤에 대나무밭이 400평정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절반도 안남고 밭으로 변해 있었다. 왕대와 분죽이 뒤엉켜 조금은 초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도 몇 십년만에 와본 고향이란다. 친구에게 사진을 요모조모 찍으라 하고 나는 마을 양로당을 찾았다. 마침 87살된 정정한 노인이 나왔다.

대뜸 70년전에 대나무밭 집에 살다 이사간 할머니를 아느냐고 했더니 '목알댁같은디'하며 택호를 댄다. 그분이 할머니라고 했더니 놀란다. 30살에 요절하신 할아버지 함자를 정확하게 대더니 그분 아들 이름(내 아버지) 한 자를 떠올리더니 끝자가 생각이 안난단다. 함자를 대니 맞다며 반색을 한다. 아버지도 같이 왔다고 했더니 모시고 오란다. 그새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는 아랫집 10살 밑의 동생과 수인사를 나누더니 약주를 한 잔 하러 가셨다.

그 할아버지 기억력이 우리 아버지 기억력을 뺨친다. 자네 조부가 참 잘 생겼다네. 키도 크고. 그 시절 그만한 한량(閑良)이 없었다네. 돌팔이(야매) 치과의사인 것은 아는가. 한복을 멋스럽게 차려입고 한번 집을 나갔다하면 두 달이나 세 달만에 들른다네. 1930년대 후반이니 참 핍박한 때라네. 신식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지를 않나 날아갈 듯한 양복 정장을 빼입고 나타나 동네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네. 그러다 그냥 무슨 종기가 났다든가 졸지에 죽었다네.

자네 조모는 참 음전하여 두 분을 잘 모시고 마음이 비단결이었는데, 두 분이 돌아가시자 이쪽저쪽 사내놈들이 청상과부라고 집적거리는 통에 남동생을 따라 친정으로 이사했지. 자네 상할아버지는 눈이 어두워서(맹인. 요즘 말로는 시각장애인) 그렇지 무지허게 영리한 분이었다네. 필상(등에 메는 부담에 문방사우-붓, 벼루, 먹, 종이-를 파는 사람)을 하며 동네 서당을 돌아다녔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우리 동네앞에 제일 좋은 논 다섯마지기를 샀다네. 눈먼 자네 상할아버지가 흙을 손으로 만져보며 ‘이 논은 잘 된다. 흙이 아주 좋은 흙이야’하면서 말이네. 아들 성제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는 자네 할머니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참 좋은 사람들 간다’며 아쉬워 했지. 그게 그러니까 딱 70년 전이야.

야, 이거야말로 굉장맹장한 증언이다. 이 어르신 총기도 대단하지만, 처음으로 집안 어르신 내력을 제대로 듣는 기회를 갖다니. 나는 행운이구나 싶었다. 아버지는 너무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연신 어르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제가 세철입니다’ 하는 게 아닌가. 동네 할머니는 다음에 또 놀러오라며 어느새 박카스를 몇 병 갖다 손에 쥐어준다.

어린 나이에 당신이 손수 묻은 산중턱의 아버지, 할아버지 묘지터를 손으로 가르킨다. 그 산이 함양조씨 종산인데 당시 조새환(생원을 이름)이라는 사람좋은 분이 내주었지. 그 산소를 20여년을 혼자 30리 산길을 넘어 혼자 걸어와(산 넘고 물 건너) 벌초를 하고 성묘를 했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산길은 무섭지 않았을까. 얼마나 고독했을까. 배는 또 오죽이나 고팠을까. 그래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시키니까.

지금은 반쪽이 된 대나무밭을 여유만 있다면, 그리고 판다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다. 사서 아버지께 드리고 싶다. 79세 아버지는 지금도 새벽녘 마당에 서거나 한 겨울이 되면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부딪쳐 나는 서걱이는 댓바람소리가 귀에 들린다고 한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등줄기에 고적함이 휘돌아 나갈 게다.

대나무밭에 거름을 할라치면 머슴을 몇 명 사서 하루종일 지게에 찰진 거름을 져다 부었다고 한다. 그런 대나무밭. 아버지가 죽마(竹馬)를 만들어 노시던 그 대나무밭을 내가 사서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저 태어난 마을에만 모셔와도 저리 좋아하시는데.

2km쯤 떨어진 산서초등학교. 운동장에 섰다.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다. 사연인즉슨, 당신 아버지가 신식 자전거로 뒤에 태우고 어느 초여름날 밤 운동장에서 무성영화를 상영했다던가. 무동을 태워주시며 화면에 나온 것같은 ‘또 역’(亦)이라는 한자를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한 것이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때였다고 한다. 뜻도 모르고 들었던 ‘또 역‘자를 평생 못잊는 사연이 있어서이다. 신불출이었을까, 변사가 내용과 대사를 구성지게 읊어대던 무성영화를 아시는가. 그러니 감회가 새로워도 무척 새로우셨을 것이다.

아쉽게 동네 어른들과 작별이다. 70년만의 상봉. 87세 된 어르신이 ’말허니까 알지 어떻게 자네 얼굴을 알것는가. 참말로 반갑네. 또 오소‘하신다. 아버지의 추억찾기, 나의 뿌리찾기에 나선 일요일 오전은 그렇게 보람됐다. 아버지는 점심식사가 약속된 어느 계 모임에서 ’아들 자랑‘과 몇 십년만에 찾은 고향마을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리라. 이야기꺼리만 만들어주라. 호강만 시켜준다고 좋은 효도 아니다.

’너그 시간 좀 있으면 이 근방에 있는 혼불문학관 다녀오그라‘하시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늙어도 너무 늙으셨다.
시방 업으면 가벼우실까. 너무 가벼워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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