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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유인 일기 78]아름다운 나이, 미수(美壽)를 아십니까? |
| 글쓴이 |
최영록 |
작성일 |
2005년 04월 03일 20시 47분 59초 |
| E-mail |
yrock22@naver.com |
조회수 |
1689 |
흔히 미수라면 미수(米壽)를 떠올립니다. 쌀 미(米)자의 파자(破字) 팔팔(八八), 여든여덟세로 알지요. 그러나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면 66세를 말합니다.
어제 어느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경기도 이천에 사시는 데 향교일도 보고 젊은이들을 상대로 예절교육에도 열을 올리는 분이었습니다. 얼굴이 대춧빛으로 홍조를 띠면서 약간 동안(童顔)같기도 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라며 수줍게 말씀하시는데, 시인이자 수필가로 등단했다는군요.
그런데 그 양반이 말씀이 “저는 젊은이들한테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들하고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게 즐겁습니다” 저에게도 최대한 경칭을 쓰는데 아무리 말씀 좀 낮추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지요.
내용인즉슨, 인터넷 서핑을 하다 젊은이들의 카페나 블로그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눈다지요. 결론은 어느 자리에서고 ‘잘난 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한 가지라도 배울 게 있을 거라는 자세로 이사람 저사람 얘기를 들으며 중요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메모도 한다지요.
이메일 받고 보내는 것은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이고,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닌답니다. 공무원생활 30년을 은퇴한 이후 줄곧 그래 왔답니다.
얼마전에는 서예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붓글씨도 일품이랍니다. 당신이 호를 스스로 우농(愚儂)이라고 지었는데 뜻은 ‘어리석은 나‘랍니다. ’사람 인‘변에 ’농사 농‘자가 ’나(myself) 농‘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컴퓨터도 배우고 사서오경도 뒤늦게 열심히 배우고, 어디고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다 쫓아다닌답니다. 그 열정에 감탄하고 그 자세가 부러웠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고 영원한 안식에 드는데,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제 말도 맨날 그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촌음을 아껴라. 일촌광음이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다. 우리 사지육신을 아끼려 하지 마라. 죽으면 다 썩는다. 잠 좀 줄여라. 죽으면 평생 허리가 부러지고 뼈가 사그라질 때까지 잔다. 우리 손은 요술 그 자체이다. 기계화가 아무리 편리해도 사람손만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말씀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제일 보기 싫은 게 낚시질하고 바둑 두는 놈들이랍니다. 무슨 시간이 그렇게 남아돌아 할랑할랑 시간을 쳐죽이냐고 합니다. 눈은 뭘라고 달려있고 입은 가죽이 남아서 찢어놓았겠냐고 말입니다. 농사꾼은 바빠 죽어 부지깽이라도 일 좀 거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전국의 유명 저수지란 저수지를 찾아다니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놈들 보면 달려가 낚시대를 뿌셔버리고 싶답니다. 눈이 보배라는 말은 맞지요. 그런 아버지도 웃겨요. 저를 코흘리개때부터 바둑을 특별과외를 시켰으니까요.
저는 역시 60 넘으신 어른들하고 코드가 통하나 봅니다. 어찌나 말이 잘 통하던지, 몇 번이고 크게 웃으며 활달한 대화를 나눴지요.
저도 한 말씀 건넸습니다. “어르신, 얼마전 중국말 한 마디를 배웠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무슨 말씀을” “老到學이란 말이 있더군요. 중국어 발음은 ‘라오 따오 쉬에’ 죽을때까지 배운다는 말이래요” “아, 그래요. 오늘 우천선생 덕분에 좋은 말 알았네요”
그 어른이 최근 지하철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한토막 들려드리더군요. 20대 중반쯤 보이는 예쁜(그분 표현) 남자 여자가 무슨 얘기를 하면서 ‘오늘 한번 쏜다’고 그러더래요. 웬만큼 젊은이들 말을 알아들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은근히 물어댔지요. ‘둘이 참 보기 좋은데 이런 말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할아버지’ ‘아까 말하던중 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이요’ ‘아, 그거요. 오늘 제가 한 턱 낸다는 뜻이에요’ ‘그래요. 나도 그런 것 같기는 하던데, 혹시 접대나 대접이나 모신다고 하면 어떨까’ ‘예. 우리끼리 쓰는 말이지만 그렇게 쓰면 좋겠네요’ ‘고맙네. 만약 외국인들이 듣거나 하면 너무 우리 젊은이들을 가볍게 보지 않을까 싶어 한마디 했다네’ 이랬다지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일망정, 젊은이들이 어른을 존중해주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지요. 은어와 속어가 판치는 세상은 사회가 갈수록 경박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분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요.
그러면서 저에게 직장생활 경험을 얘기해달라고 하시는데, 참 민망해 혼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진짜로 알고 싶답니다. 언론계라는 데는 어떤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떤 신문을 만드는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애환도 궁금하다고 합디다.
참 호학적(好學的)이죠. 유머도 굉장히 풍부했습니다. 서너 명이건 열댓 명이건 모임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씩 요령있게 정리한 후 유머 한 자락 건네시며 끝내시는 폼이 여간 멋있지 않았어요. 목소리도 연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떻게 사근사근한지, 여성팬들이 줄을 잇는다나요.
은퇴직후 ‘임금님표 이천쌀’ 이라고 상표를 관리 전국에 크게 인기를 끌었으니 쌀 특산화의 선두주자인 셈이지요.
아무튼 오늘 모임은 그 어른과 이야기하느라 참 유쾌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어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고령화사회(고령사회)가 빠르게 우리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어른(늙은이)라고 다 지혜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혜도 역시 평생 가꾸어야 할 지적 브랜드(상품)입니다. 연만(年滿, 年晩:나이가 많음. 늙바탕에 듦)하다고 해서 다 존경받을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요새 어디 촌시럽게 환갑잔치 허는 사람 봤습니까? 60은 청춘이지요. 브라보! 아빠의 청춘. 지금 예순되신 분들도 어쩜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100세까지 사실 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세상은 ‘사오정’이네 ‘오륙도’네 하니 어찌된 판속인가요? 40대 후반에 저같은 백수건달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도무지 모르것당개요. 어찌라는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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